[국내-인터뷰] 전인치유(全人治癒)의 꿈, 안양샘병원 박상은 원장
한민족복지재단의 운영이사회 의료분과위원장을 맡게 되신 샘안양병원의 박상은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한민족과의 첫만남 에피소드가 있던데요.
1998년 한민족복지재단 초창기에 선봉인민병원에서 남한의 의사가 장기체류할 수 있는 ‘라진선봉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당시 제가 의료선교협회 총무였는데 협회로 북에 갈 의사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열심히 북한에 갈 의사를 찾는데 ‘왜 너는 갈 생각을 안 하고 다른 사람만 보내려고 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리더군요. 그래서 제가 가기로 마음 먹고 장기체류할 자원 의료진 10여 명과 중국 압록강 두만강 강변 연변에서 침묵훈련, 한 끼 굶기 훈련 등을 하면서 현지훈련을 했죠.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라진의 문이 막히고 대신 평양이 열려 2년 뒤 평양 제1인민병원 프로젝트를 위해 북한에 가게 됐죠.
당시 못 가서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유서까지 썼던 터라 살았다는 안도감도 들더군요. 아무튼 그때 함께 훈련받았던 이들이 예멘 내과의사로, 알바니아 약사로, 이라크 신경과의사로 선교사로 세계 곳곳에 나가 있어요.

2000, 2006년 두 차례 방북하셨는데 차이가 있다면……. 북한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기회가 없다가 2000년 처음 북한에 갔을 때, 같은 민족이고 형제들인데 내가 이토록 모르고 어떻게 살아 왔을 수 있나 싶었습니다. 굉장히 놀래기도 했고 또 자기 반성도 많이 했어요. 그때가 10월 말이어서 쌀쌀했는데 공항에서부터 전기가 나가 열악한 북한의 모습을 도착하자마자 경험했죠. 난방도 물론 제대로 안 됐구요. 병원에 가서 만난 환자들이나 의료진들의 모습도 그렇고 약품이나 시설이나 뭐 제대로 된 게 없으니까 가슴이 아팠죠. 그때 북한을 돕는 일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올해 다시 방문을 해보니 많이 달라졌다 싶더군요. 분위기, 사람들의 눈빛, 옷차림 행동가지가 훨씬 개방되었다는 게 느껴졌죠. 그런데 막상 병원을 가보니까 실제적인 삶에서는 좋아진 게 별로 없더라구요. 한민족이 보내준 의료기기 외에 별로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더군요. 개방의 물결은 오고 있으나 삶의 질은 그대로인 셈이죠. 의사, 단체장, 방송... 각 활동마다 느낌이 다르실 텐데...
단기간에 병을 고쳐주는 것도 아니면서 죽을 때까지 옆에 있다가 임종을 지켜보는 게 내과예요. 특별히 해 줄 게 많지 않으니 목에 힘 주지 못한다는 게 좋죠. 하지만 전반적인 그 사람의 생명을 다루면서 생명장기(vital organ)를 다룬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 천 명의 죽음을 목격했는데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며 끝까지 죽음을 회피하는 사람, 죽음을 오히려 반갑게 맞이하며 환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두 부류가 있더군요. 죽음 너머에 또 하나의 세상이 있다는 걸 늘 생각하고 또 임종을 앞둔 환자가 만나는 마지막 크리스천이 어쩌면 나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 업무 이외에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제 전공이 신장내과니까 신장학회, 투석전문의쪽 활동, 생명윤리와 관련된 여러 모임(생명윤리학회), 의료선교와 관련된 단체(누가회 이사장) 활동과 NGO활동 크게 네 가지 영역입니다. 그리고 틈틈이 언론 매체에 글을 실고 방송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일반매체에서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냐”는 식으로 밀어붙이기식 설득이 아닌 일반인들이 동의할 수 있는 논리와 언어로 성경적 진리를 풀어내고 싶어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고 분명 하나님의 진리라면 일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MBC ‘100분 토론’ 같은 데 나가는 걸 어떤 면에서 사명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의료분과위원장을 수락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보건의료사업은 한민족복지재단의 대북지원사업들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중요한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재단이 북에 많은 의료장비를 지원해 왔고 또 이번에 평양의대병원에 신장실을 새로 마련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평양만 시작하지만 세팅이 잘 되면 각 도 인민병원에도 신장실 세팅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장비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2000년에 못했던 장기체류를 통해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의료지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고1때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걸 봐서일까. 박상은 원장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한민족복지재단의 법인이사로 활동하고 계신 박재형 서울대 의대 교수도 박 원장의 형님이다.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영적 모든 면을 아우르는 전인치유를 병원의 모토로 삼고 있는 안양샘병원은 매주 목요일 전인치유집회를 한다. 그 시간에는 환자와 의사와 의료진들이 다 같이 모여 찬양도 하고 강의도 듣고 부둥켜안고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들어가기 어려운 회교권, 북한 중국 실크로드를 따라 의료선교를 하는 꿈을 꾸고 있다. 북한의 문이 빨리 열려 그곳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북한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싶다는 꿈쟁이 박상은 원장. 얼른 통일이 되어 북한에서도 전인치유의 꿈을 펼치고자 하는 그의 꿈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 원문: 해피빈http://happylog.naver.com/hankorea/post/PostView.nhn?bbs_seq=19605&artcl_no=123456829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