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저는 지금 캄보디아에 살고 있습니다.

Share

 저는 지금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습니다글. 황한아 캄보디아 봉사단원‘저는 지금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은 현재 내 홈페이지 제목으로 되어있다.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가려고 지원을 해놓고 정확하게 정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확정되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그리고 정하고 나서는 훈련받으랴 준비하랴 부랴부랴 서두르다 캄보디아에 가게 되었다는 인사를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나 나를 찾으러 홈페이지에 오면 내가 현재 캄보디아에 있다고 인사드리려는 생각에 ‘저는 지금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을 달았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정말 내가 이 땅에서 잠깐 들린 곳이 아니라 정말 캄보디아에서 캄보디아 사람들과 이리 저리 부딪히고 살을 비비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차로 10분 더 프놈펜 밖으로 가면 준부완이라고 하는 곳에 내 학생들이 있다. 이곳 Youths Center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어와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이곳 청소년이나 취업 전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 학기 중이어서 오후 5시 20분에서 6시 20분, 6시 30분에서 7시 30분, 두 개의 반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두 수업 모두 주 교재와 함께 문법이나 어휘 등을 함께 해서 교재에서 다루는 문법들, 어휘들을 보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영어전공자는 아니고 필리핀에서 2년 정도를 지냈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어린이 영어지도자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받기도 했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청소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되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첫 번째 반과 두 번째 반의 교재를 같은 것을 선택했다가 너무 큰 수준차이 때문에 첫 번째 반의 수준에 맞게 더 쉬운 책으로 바꿨던 적도 있었다. 이런 저런 실수를 하면서 점점 교육방법이나 교재 등을 학생들의 수준에 맞도록 찾아가게 된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말이 전혀 통하지 못해서 두 분기 동안은 통역관을 두어서 수업을 했었다. 수업 내용이 쉽게 전달되어서 진도가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통역관의 설명만을 들어서 받아쓰기 등의 듣기 시험을 치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세 번째 분기부터는 통역관을 두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비록 속도는 더뎌졌지만 그래도 수업내용에 전에 비해서는 집중을 해서 영어듣기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기본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여기 학생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영어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장에는 ‘Where are you from?’이 있다. 'I'm from Korea.'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I'm from Seoul.’이라고 대답할 수 도 있다. 한국의 수도라고 하면 서울을 떠올리고 미국의 수도하면 워싱턴이라고 떠오르는 것은 우리에게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여기 학생들은 미국의 수도가 어디인지 영국의 수도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그리고 캄보디아가 세계 지도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무지개의 일곱 색을 통해서 영어단어를 익히는 수업이 있었다. 15명의 학생 중에 단 한명만이 일곱 가지 색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고 다른 학생은 ‘무지개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온 뒤 수중기와 햇빛이 만나서 우리 눈에 색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공교육이 교육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책을 보더라도 한국에서는 좋은 종이에 칼라 사진들로 되어있지만 여기는 그냥 인쇄가 깨끗지 않은 종이에 흑백 사진도 아닌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랑이를 실제로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사진도 아닌 그림으로 호랑이를 이해를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많고 다양한 교재, 교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5월부터 Youths Center에서 현지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는 함께 생활하는 것이 크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로 오는 다른 습관들로 함께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이 생겼다. 예를 든다면,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새벽 5시쯤에 일어나 점심에 낮잠을 자지만 내 경우에는 아침 7시쯤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어서 새벽에 일찍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게 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Youths Center 역시 지난 5월부터 시작되어서 현지 청소년들의 학교 준비를 함께 준비하면서 현지의 사소한 것들도 알아가는 시간들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캄보디아 문화와 사람들에게 빨리 익숙해졌다. 나는 학교에서 연시준비를 할 때도 실습을 갔을 때도 느리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서 내가 참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내가 느린 이유는 단지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하려는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전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또 설명을 4, 5번을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좌절’만 했었다. 늘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왜 자꾸 못난 모습으로 있는가 하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점점 청소년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공부하는 습관조차 가지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런 이유들을 알아가면서 청소년들을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영어를 쉽게 배우고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완벽하게 하려던 성격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속도에 맞게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도록 칭찬과 격려를 자주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곳의 학생들도 작은 것에 ‘Good’이라는 나의 반응을 듣고서 ‘한아선생님은 항상 ‘good’이라고 말해서 좋다’는 말을 내게 해 주었고 또 ‘Good’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생겼다.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었다. 나와 영어수업을 하던 몇몇 학생들이 영어수업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고 돈을 벌기위해 학교도 그만두고서 공장에 일하러 갔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지금 당장의 돈보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야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을 해도 첫째라서 부모님을 도와야 한다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참 마음이 아팠다. 가끔씩 그 학생들이 복지관에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데 일에 찌들려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학교가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꼭 안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에는 이곳 학생들과 함께 나누며 행복하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고 왔었다. 그리고 처음 수업을 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서툴지만 수업을 했었고 학생들과 다른 문화, 가지관 등을 가졌지만 이해하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길에서 플라스틱 병이나 캔을 줍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자전거도 없이 걸어 다니면서 음식이나 과일 등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이 그냥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적응했다는 것과 다르게 모든 것을 낯설지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이곳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학생들이 나를 인정해 주었을 때였던 것 같다. 캄보디아가 덥다보니 한 번씩 몸살이 나서 아픈 모습을 학생들에게 많이 보여주었다. 그럴 때 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하지 말고 쉬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괜찮다며 그냥 수업을 하겠다며 수업을 했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곳 학생들에게 다르게 느껴졌었는지 ‘한아선생님은 몸이 아파도 수업을 다 해서 좋다. 고맙다’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또 항상 웃는 모습이 좋아서 자신도 늘 웃고 행복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곳에서 일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나는 그 일들은 한국에 살았어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살면서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참 못된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왔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올 때 까지 난 내가 교만해 지지 않으려고 도움을 주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받으러 간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곳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참 좋을 일 한다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보람된 삶을 살고 오라며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며 이곳에 왔다. 하지만 생활을 하면서 보람된 삶이라는 것에도 못된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한 보람이라는 말 속에 내가 어떤 일을 해서 즐거움을 얻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한 보람은 바로 내 만족감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부끄러워졌다. 지금 나는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내 모든 기대와 욕심을 버렸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느끼고 깨달은 부분에서는 내 기대와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곧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국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이곳에서 느낀 모든 것들을 간직하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간절히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캄보디아가 계속해서 성장해서 많은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원문: 해피빈http://happylog.naver.com/hankorea/post/PostView.nhn?bbs_seq=19604&artcl_no=123456895248

당신의 나눔이,
누군가의 내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이웃의 자립을 솔턴브리지와 함께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