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해외봉사단원 활동수기 - 현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삶(송지연 단원)
해외봉사활동, 현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삶 인도네시아 봉사단원 송지연 부산에서 서울로 버스 4시간 30분, 서울에서 인도네시아로 비행기 약 7시간, Jakarta에서 이곳 Purbalingga로 기차 5시간. 생전 처음 해보는 장시간의 여행.
Jakarta공항에서 방문비자로 들어가 돌아가는 Ticket이 Open Ticket이라는 이유로 이민국에서 해결되기 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상상만 해도 겁이 날만도 한 문 없는 지하철, 또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걸터앉아 이동하고 있는 현지 사람들, 브라질 밀림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산과 나무에, 먹도 뒤돌아서면 배고픈 찰기 없는 날리는 밥과 기름기 많은 현지 음식, 그리고 귀에 총알 같이 지나가버리는 너무나 생소한 현지어. 이 모든 것을 처음보고 처음 체험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제가 있는 Purbalingga 마을은 수도인 Jakarta에서 차로는 7시간 기차로는 5시간 걸리는 외곽 시골 지역으로, 전 세계로 수출할 만큼 가발과, 눈썹공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게도 이곳에 대부분의 큰 규모의 공장들은 한국기업들에 의해 세워졌고, 이곳의 지역발전이나, 성장에 큰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업장은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과, 부모나 친척이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한국어교육과 고아원 아동케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외봉사활동’하면 뭔가 거창하게 생각하시거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있으면서 이들과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해외봉사활동'라는 것은 어렵거나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들과 함께 살고 생활하고 먹고 마시면서 함께 웃고, 우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상 겉으로는 봉사나 헌신을 하러온 사람이 저 일지 모르지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제가 이들에게 준 것보다 이들에게 받은 것이 더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어눌하지만 그래도 더듬거리며 하는 현지어로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거리낌 없이 웃으며 대화하며 매주 수업이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대하지만, 처음 온 당시에는 낯선 그들과 통하지 않는 대화 가운데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벽을 허물어 준 것은 제 의지나,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마음이었습니다. <프루발링가 중심 광장>

<한국학센터 4기를 마치고>
거의 현지어가 되지 않을 당시 한국학 센터 4기생들의 Camp가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Camp의 보조로 뛰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한계는 저에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에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오히려 본인들이 배운 얼마 안 된 한국어를 사용해가며 사진을 찍자며 불러 주는 학생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저와 말이 통하고, 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먼 곳에서 이렇게 와서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전부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준들을 선정해 놓고 있는 것인지, 언어, 기술, 경력?!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작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을 생각해주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어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어서 이들이 행복해 질 수 있었다면, 아마 해외봉사활동은 딱딱한 하나의 제도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매주 함께 나눈 시간들이 쌓여 지금은 학생들과 수업하고 인사하고 대화를 하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집니다. 학생들은 이제 제게 단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을 넘어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나 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준들을 선정해 놓고 있는 것인지, 언어, 기술, 경력?!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작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을 생각해주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어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어서 이들이 행복해 질 수 있었다면, 아마 해외봉사활동은 딱딱한 하나의 제도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매주 함께 나눈 시간들이 쌓여 지금은 학생들과 수업하고 인사하고 대화를 하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집니다. 학생들은 이제 제게 단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을 넘어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나 봅니다. <현지인들과 함께(맨 오른쪽이 송지연단원>

<한국학센터 학생의 가정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