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아프리카 수단에서,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아프리카 수단에서,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이경태 수단봉사단원
5월. 이곳은 벌써부터 45도가 넘는 폭염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끔 가슴까지 밀고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숨쉬는 것조차 힘겨워 지쳐버리는 날 저녁엔 어김없이 50도가 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잠시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푸르른 나무와 초원은 오간데 없고, 저 멀리 지평선까지 온통 단단하게 굳어버린 모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늘 한점 없는 나일의 백사장은 한낮의 열기를 피할 곳도, 그 열기에 달구어져 맨발로 뛰어다닐 수도 없어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없습니다. 하붑이라 불리는 모래바람이 마치 영화 미이라의 한 장면처럼 폭풍이 되어 밀려올땐 두려운 마음부터 앞섭니다. 하지만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다급한 마음으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은 이곳이 낮설은 외국인뿐입니다.
<메가톤큽 하붑을 경험한 날 차안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개를 활짝 편 채로 활공하는 매, 독수리를 보며 날개의 자유를 부러워해보기도 합니다. 시장에선 가판대에 파, 양파, 토마토, 오이, 당근 등 야채를 늘어놓고 손님을 부릅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행여 야채가 상할까 중간 중간 물도 뿌려줍니다. 나일강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 속에 붉게 물들어 잠기어 가는 태양에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이 상황을 연출하시는 분의 예술성에 감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수단입니다. 기후도 자연경관도 환경도 음식도 보고 느끼는 것까지 한국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알던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최초로 NGO봉사를 나왔던 기술학교는 갈렙농부님(예칭)이 운영하시는 곳입니다. 기술학교는 현지인으로 구성된 농부들이 소, 양, 닭 등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경작하며, 나무를 가꿉니다. 그들은 한달에 20~30여만원도 채 안되는 월급으로 대가족생활을 해야합니다. 비단 우리 기술학교의 농부들 뿐 아닙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의 생활이 그렇죠.
게다가 어떤 이는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몸에 남아, 다리가 없어 걷지 못하는 자, 손이 없어 일을 못하는 자, 눈을 다쳐 앞을 못보는 자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이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대부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아슬하게 피해다니며 조금 더 풍족한 삶을 사는 자들의 연민의 정에 기대어 삶을 연명합니다. 그렇지만 함부로 도와 줄 수도 없습니다. 행여 도와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도 같은 ‘행운’이 있을까 싶어 어김없이 모여들고, 때론 도움 받은 사람이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구타당하고 가진 것 마저 빼앗겨 더욱 더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전쟁의 아픔은 고스란히 영혼에도 남아있습니다. 약한 아이들은 작은 몸동작을 위협이라 오해하기 일수고, 그럴때면 본능적으로 두손을 들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또, 들은 말이지만 다르푸르에서 왔다는 어떤 아이는 칼을 머리맡에 두어야만 잠이 든다고 합니다. 지친듯 걷는 걸음에 걸친듯만듯 하던 옷이 땅에 끌리며 알몸이 되어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펑펑 우는 사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걷는 사람. 이곳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또 한편에선 그런 사람들을 감싸주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갈렙농부님 같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분들. 또는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또는 직장에서 보내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향해 사랑을 펼치고자 일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간다고 합니다.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그게 인간 아닐까요? 다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인것 같습니다. 행복을 찾는 방법이 조금 더 자기 주관적이 되어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을 돕는 행동에 ‘고결한 희생’ 따윈 필요 없었습니다. ‘그릇의 크기’ 또한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저 행동으로 옮겼을 때 오는 ‘충실한 만족감’과 ‘행복’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물질들로는 채울 수 없는 수많은 것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돈, 명예, 권력 등으로는 감히 가꿀 수 없는 ‘스스로의 영혼에 투자하는 시간!’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칭찬 받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똑똑하다! 성격이 좋다! 멋지다! 아름답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 직장이 좋다! 돈을 잘 번다 등등. 그런 수없이 많은 칭찬 중에서 ‘너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라는 칭찬을 받는 저를 상상해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첫째라 손꼽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영혼이 깨끗지 못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손가락질 받기일수이고, 그 자리 또한 부끄러워지기 십상입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자리에 있던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눈에 띕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저는 그렇게 이곳에서 저의 영혼을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다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을 배웠고, 때로 시간적, 경제적인 이유로 직접적으로 행하기 어려울 땐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응원해 주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을 배웠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며,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었고, 진정한 행복이었습니다. 약 1년여의 시간동안 아프리카 수단에서 이곳의 사람들과 섞여 살았습니다. 때로는 단돈 500원 때문에 큰 소리 내며 화를 내고, 알수 없는 말이지만 상대방이 호의적으로 웃기에, 또는 그렇게 재미있는 상황에 큰 소리 내어 웃고, 많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홀로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되어 어색함에 포커페이스가 되어버리고, 택시, 버스를 타고, 간간히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때로는 걷고, 뛰며 그렇게 그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의 생활뒤 남은 것은 ‘추억’과 ‘사랑’과 ‘행복’입니다. 그렇게 성내고, 웃고, 울며 만든 추억 속에서 함께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나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깊이 바라 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소중합니다. 굳이 제가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연예인을 바라보며 환호하듯이 그들은 보기 드물게 악착스럽고, 비쩍 말라 불쌍하게 생긴 동양인 하나가 돌아다니는 그 삶 자체에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은 나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해 줍니다. 나 또한 나를 위해 미소지어주는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이곳 아프리카에서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찡그리는 삶을 살고 있기에 지금도 행복합니다.
<기술학교 농부의 생명을 위협한 전갈>